아주신씨 세첩에 대한 소지이다. 鵝洲는거제의 속현이다. 혹자는 韓山의 구호가 鵝州이므로 아주신씨가 한산신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사람도 있으나 洲와 州는 별개의 글자이므로 같은 본관이 아니라고 했다.
혹자는 "아주(鵝洲) 성씨는 본래 평산(平山)에서 나뉘어져 나온 것으로, 모두 장절공의 후손이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또한 이상할 것은 없으나 근거할 만한믿음직한 전적이 없다. .....”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지난 2020. 11. 제24회 경북영사인물학술발표회 "회당 신원록 선생의 삶과 학문"에서 임노직(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께서 의성지역 아주신씨의 가학 연원을 강의하시고 마지막에 위 문구를 해석해 주셨는데, 아주신씨 대종회 임원이 대종회는 익휴를 시조로하고 있는데 왜 영미를 시조라 하느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자. 임노직 박사가 답하길 "본인은 있는 문장을 해석했을 뿐이다. 그리고 고서 대부분이아주신씨는 영미가 시조로 되어있다"라고 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학자.
조선후기 학자 신체인(1731∼1812)의 문집.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장(子長),호는 회병(晦屛). 신숙범(申叔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신분구(申賁龜), 아버지는신도만(申道萬)이고, 어머니는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민행(金敏行)의딸이며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柳氏) 유후원(柳後元)의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신체인(申體仁)[1731~1812]은3~4세때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면 말도 없이 그 집에 가서, 글 읽는 소리를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 화장산(華藏山)[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일대]의초당에서 공부하였고, 장성해서는 김낙행(金樂行), 임필대(任必大),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수학하였다. 30세 무렵에는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의술·병가·산수(算數)·복서(卜筮) 등 여러학문을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1761년(영조 37) 향해(鄕解)에 응시해서 장원하는 등 학문적 명성이 있었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1782년(정조 6) 금산(錦山)[구미리]에 금연 정사(錦淵精舍)[현 금산 서원(錦山 書院)]가 완성되자 그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1786년에는빙계 서원(氷溪 書院)의 교석(敎席)을 주도하며 통강례(通講禮)를행하고자, 주자(朱子)의월삭회약(月朔會約)을모방해 의절까지 정해 놓았으나 실시하지못하였다.
1788년 눈병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자, 존양(存養) 공부에 열중하였다. 1807년(순조 7) 경술과문장이 모범이 된다하여 의성 현령(義城 縣令)이 천거하였고, 경상도관찰사가 연이어 신체인의 학행을 조정에 계청하였다.
梧峯申之悌와 孤松 申弘望의후손으로 벼슬은 하지 않은 채 산림에서 李象靖, 金樂行의 문인으로 활동하였는데文才와 學德이 뛰어나다는평가를 받았다. 저자의 저서로는 시문 외에 聖賢들의 ‘敬’에 대한 요지를 편차한 「崇敬錄」 2책이 남아 있다.
저자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族子인 申鼎周(1764~1827)가지은 遺事(申鼎周 著, 陶窩集 卷4), 그리고 이를 가지고 저자의 아들 申瀷辰(1779~1834)이所菴 李秉遠(1774~1840)에게 부탁하여 1834년에받은 행장 뿐이지만, 이를 통해 볼 때 이들에 의해 저자의유적과 유문이 수습 정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의 편찬 간행에 대해서는 序跋文이나 다른 기록이없어 문집의 정확한 간행 연도를 알 수가 없다
학문과저술
이상정의 문하에서 함께공부하던 280여 명의 인사들과 호문학단(湖門學團)을 구성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호문학단 중에서도 그는 학문이 뛰어나호문육군자(湖文六君子)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의 문집으로는 12권 6책의『회병집(晦屛集)』이 전하는데, 19세기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회병집』 권6에 수록되어있는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 천주교를 비판한 글로, 당시 천주교에 대한 영남 유림의 인식을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외에도 ‘경(敬)’의 요체에 대해설명한 4권 2책의『숭경록(崇敬錄)』을 저술하였으며, 정만양(鄭萬陽), 정규양(鄭葵陽) 형제의어록인 『훈지양선생어록(塤篪兩先生語錄)』도 산교(刪校)하였다. 한편, 『아주 신씨 참판공 파보』에는 『징성록(徵省錄)』을 저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시대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 1731~1812)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목판(木板)으로 판각된 후, 시문(詩文)의 일부(一部)와 부록문자(附錄文字)를활자(活字)로 보각(補刻)하여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간행경위(刊行經緯)는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本集)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은 없고목록(目錄)이있다. 권6은 잡저(雜著)이다.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안정복(安鼎福), 이헌경(李獻慶), 조술도(趙述道) 3인의천주교(天主敎) 변척(辨斥) 글을 읽고 그 글에 실려 있던 ‘천학종지도(天學宗旨圖)’가사욕(私慾)을 내세웠으므로 천주학(天主學)이이단(異端)임을 증명(證明)하고, 세 사람의 설(說)을보완(補完)하기 위해1791년에 쓴 것이고, <중하상부재이면변(中何嘗不在裏面辨)>은 남헌(南軒) 장식(張栻)이 주장한 ‘이발지후중하상부재이면(已發之後中何嘗不在裏面)’설을 펴는 선배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주자(朱子)의 정론(正論)을 들어후학(後學)을경계한 것이다.권12는 부록(附錄)이다. 이병원(李秉遠)이 1834년에지은 행장(行狀)이 실려 있다.
묘소
『아주 신씨 대동보』에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동곡(凍谷)에 있다.
현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금산 서원에 신지제(申之悌), 신지효(申之孝)와 함께배향되어 있다. 금산 서원은 신체인이 강학을 위해 1782년건립한 금연 정사를 1977년 중건하고, 1981년 서원으로승격한 것이다. 신체인의 위패는 신지제와 함께1977년 배향되었다.